일과 나의 달콤쌉싸름한 연애사, 그 세번째 시리즈로는 20년차 마케터인 옥진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매일 출퇴근하는 길도 내가 사는 동네도 다르게 보이죠. 커리어 시작점과 중간지점을 지나 끝지점에 가있는 멤버가 보는 일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2N차가 되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어느정도 해소가 되는지, 아니면 어떤 또다른 고민들을 마주하게 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사는 동안 일에 대한 고민이 결코 끝나지 않을거란걸 알면서도 지금보다는 나아질거란 확인이 필요했을까요. 정작 갭이어를 고민하고 있다는 20년차 옥진님과 어느 푸르른 날 마이시크릿덴에서 울려펴진 우리의 대화는 일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연차보다는 나 스스로 내 일의 의미와 나 자신에 대해 숙고하고 정의내리는 시간을 통과했는지 여부가 일과 나 사이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핵심이라는 것을 전하며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해봅니다.
지난 20년간 직장인으로서 마케터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최근 갭이어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코로나 기간 동안 약 2년 정도의 재택근무를 통해 물리적인 출퇴근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이로 인한 여유로운 시간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승진과 이직을 통한 커리어 개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죠. 저는 금융회사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해 IT 회사를 거쳐 현재 F&B 대기업까지 20여년간 마케터로 살아오면서 일에서의 성취감을 제 자신 만큼이나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날이 밝을 때 퇴근한 것이 매우 어색해요). 그동안 승진과 이직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바를 이뤄왔지만 일의 결과물을 통한 성취감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성취의 결과가 월급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 일의 의미에 대해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커리어와 삶을 새롭게 구상하기 위해 안식년과 같은 시간이 지금 제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소위 말하는 높은 연봉 받으며 좋은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은거지 거기서 무슨 의미까지 찾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일에 대한 고민 한두가지 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저의 고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기로 선택했고요.
각자 시기만 다를 뿐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한번은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야 할 때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옥진님에게는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결정을 응원합니다. 옥진님이 마주한 일의 다양한 모습이란건 어떤걸까요?
나 스스로 내 일을 어떤 의미로 수용하고 정의하고 있는지가 일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일을 수입의 원천으로 여긴다면 ‘월급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이 경우에는 연봉이 높거나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측면에서 일을 바라보는 것이 맞다고 봐요. 하지만 일에 대한 개인적 또는 사회적 의미나 영향력까지도 고려한다면 스스로를 월급쟁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월급쟁이로부터 벗어나 일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에서의 성취감을 제 자신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시기를 거쳐 그 일을 해내는 저의 모습(과정) 자체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거든요.
옥진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그리고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결정하신 것 같네요. 아직 저는 14년차 중간관리자인데 옥진님께 묻고 싶어요. 20년차가 되고나니 사회 초년생과 중간관리자 때 가졌던 커리어에 대한 질문이나 고민이 어느정도 해결이 되셨나요? 아니면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든지 오히려 새롭게 더해진 부분도 있으실까요?
저같은 경우는 앞서 말한 이유로 오히려 새로운 질문과 고민이 더해진 케이스인것 같아요. 제 스스로 일을 열심히 또 꾸준히 했었던 이유를 여전히 찾는 중이니까요. 다만 사회 초년생 때 했던 고민이 10개라면 지금은 6-7개 정도예요. 많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같은 질문이여도 제가 질문을 대하는 방식, 저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봐요. 이전에는 고민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면 누군가와도 이야기를 나눠요. 각자의 인생이니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의견을 통해 내가 나 자신만의 기준에 집착하는건 아닌지도 살펴보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정서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죠.
인터뷰를 나누며 바라본 풍경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맞아요.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든 잠시 스쳐지나는 만남이든, 지금 옥진님과 저도 그렇고 우리는 서로의 삶에 발자국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한테 울림을 주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HFK 모임을 통해서 지식이나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같은 팀장이자 직장인으로서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어요. 20년차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아마 HFK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최근에 IT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갭이어를 가지려는 고민을 나눴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네모란 문제를 네모로만 보고 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아예 문제를 세모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저의 고민이 네모란 문제를 세모로 바꾸고 있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아하, 싶었죠.
지금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확신이 든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회사탓, 환경탓인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다음에 어느 회사를 가야하나?’, ‘거기서 어떤 일을 하게될까?’라는 질문만 던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열정 가득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태도로 있는가?’라고 질문 자체가 바뀌었죠.
저도 그렇게 질문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어요. 과연 이 선택은 내 욕망에 충실한 것인가 묻기도 하고, 내가 좋은거든 싫은거든 과연 어디까지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지 나만의 기준과 정의를 세워가는 시간이요. 나의 한계치를 아는것, 내 나름대로 재정의하는 것, 이런 시간을 가지니 이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지난 제 커리어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일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어왔지만 보편화된 루트가 아니면 쉽게 입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다행히 코로나를 계기로 연차/직종/성별 상관없이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이 공론화되고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지고 있는거죠. 그간 한국 사회는 나에게 집중하고 숙고할 만한 기회나 여유 자체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갭이어를 갖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이전의 저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에요.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만 봐도 제 인생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느껴요. 제가 갭이어 이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20년간 직장생활에서 배운 걸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시간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삶으로 체화되어 있으니까요. 넥스트 커리어를 선택할 때에는 월급쟁이로서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싶어요.
어떤 선택이든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당위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숙고의 과정을 몸소 통과했는지 여부는 같은 상황이라도 관점이 다르니 큰 차이가 있는거구요. 옥진님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직 테크닉이나 어떤 이슈가 아닌 옥진님의 본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여겨져요. 백세시대에 커리어의 끝지점은 없지만 커리어 시작점, 중간지점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회사 이름 대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면 좋겠어요. 저연차일때는 오히려 자기 확신이 높아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있는데 어딜 가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중심있게 서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이직이 유행이고 트렌드처럼 비춰지지만 사실 이직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99%의 기득권을 내려두고 내가 추구하는 1%를 얻는거거든요. 새로운 시작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니 이직에 대한 선택은 항상 신중해야 된다고 봐요. 또한,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유지하게 되더라도 이 역시 충분히 좋은 커리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백세시대에 커리어의 끝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커리어는 개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고 절대 단기 레이스가 아니라는 점이예요. 그러니 평소 일과 삶에 대해 편히 이야기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꼭 만드시길 바래요. 너무 깊은 관계가 아니어도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HFK 같은 커뮤니티도 좋은 기회이고요.
적절한 거리의 타인이 오히려 더 위로가 될 때가 있죠. 그럼 반대로 혹시 3N년차 커리어의 길을 겪고 있는 분을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은 전혀 예상을 못한거라 다른 이야기로 대신 답변하자면 개인적으로 개그맨 이경규 씨를 굉장히 좋아해요. 40년이 넘는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본인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갖고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러워요. 아마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저도 10년, 20년 뒤에 이경규씨처럼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사진 출처: 마이시크릿덴
옥진님은 이번 인터뷰를 그동안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정해지지 않은 넥스트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고 싶으셨다해요. 우리 모두 넥스트 커리어를 고민하지만 이 고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직 기술보다는 내 자신의 정체성과 내가 추구하는 일의 본질을 정의하는게 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 아래 혹시 어떤 지식이나 테크닉만 쌓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질문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제대로 고민하기하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잠시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었다는 옥진님. 나를 발견해나간다는건 어쩌면 용기를 갖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과 이직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삶과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된 이번 인터뷰, 어떠셨나요? 여러분은 지금 일에서 삶을 바라보고 계시나요 아니면 삶에서 일을 바라보고 계시나요?
갭이어 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되실지 알 수 없지만, 이 과정을 직접 관통한 후 더 성장해있을 옥진님의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숙고의 과정을 거친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내 일은 전과는 다를테니까요.
판을 만들고 공공가치를 확산시키는 커넥터로서 사람/지역/국가 간 파트너십 제고를 위한 프로젝트 기획 14년차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퇴근후에는 커뮤니티와 글쓰기를 통해 낯선 환경과 다른 사람들에 나를 노출시키며 나다운 선택을 위한 경험수집가 이기도 합니다.
멤버 인터뷰: 나와 일과의 연애사, 옥진님
일과 나의 달콤쌉싸름한 연애사, 그 세번째 시리즈로는 20년차 마케터인 옥진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매일 출퇴근하는 길도 내가 사는 동네도 다르게 보이죠. 커리어 시작점과 중간지점을 지나 끝지점에 가있는 멤버가 보는 일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2N차가 되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어느정도 해소가 되는지, 아니면 어떤 또다른 고민들을 마주하게 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사는 동안 일에 대한 고민이 결코 끝나지 않을거란걸 알면서도 지금보다는 나아질거란 확인이 필요했을까요. 정작 갭이어를 고민하고 있다는 20년차 옥진님과 어느 푸르른 날 마이시크릿덴에서 울려펴진 우리의 대화는 일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결국 연차보다는 나 스스로 내 일의 의미와 나 자신에 대해 숙고하고 정의내리는 시간을 통과했는지 여부가 일과 나 사이 지속가능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핵심이라는 것을 전하며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해봅니다.
지난 20년간 직장인으로서 마케터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최근 갭이어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코로나 기간 동안 약 2년 정도의 재택근무를 통해 물리적인 출퇴근으로부터의 해방감과 이로 인한 여유로운 시간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승진과 이직을 통한 커리어 개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죠. 저는 금융회사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해 IT 회사를 거쳐 현재 F&B 대기업까지 20여년간 마케터로 살아오면서 일에서의 성취감을 제 자신 만큼이나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날이 밝을 때 퇴근한 것이 매우 어색해요). 그동안 승진과 이직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바를 이뤄왔지만 일의 결과물을 통한 성취감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성취의 결과가 월급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 일의 의미에 대해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커리어와 삶을 새롭게 구상하기 위해 안식년과 같은 시간이 지금 제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소위 말하는 높은 연봉 받으며 좋은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은거지 거기서 무슨 의미까지 찾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일에 대한 고민 한두가지 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저의 고민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보기로 선택했고요.
각자 시기만 다를 뿐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한번은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야 할 때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옥진님에게는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결정을 응원합니다. 옥진님이 마주한 일의 다양한 모습이란건 어떤걸까요?
나 스스로 내 일을 어떤 의미로 수용하고 정의하고 있는지가 일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일을 수입의 원천으로 여긴다면 ‘월급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이 경우에는 연봉이 높거나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측면에서 일을 바라보는 것이 맞다고 봐요. 하지만 일에 대한 개인적 또는 사회적 의미나 영향력까지도 고려한다면 스스로를 월급쟁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월급쟁이로부터 벗어나 일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에서의 성취감을 제 자신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시기를 거쳐 그 일을 해내는 저의 모습(과정) 자체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거든요.
옥진님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그리고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결정하신 것 같네요. 아직 저는 14년차 중간관리자인데 옥진님께 묻고 싶어요. 20년차가 되고나니 사회 초년생과 중간관리자 때 가졌던 커리어에 대한 질문이나 고민이 어느정도 해결이 되셨나요? 아니면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든지 오히려 새롭게 더해진 부분도 있으실까요?
저같은 경우는 앞서 말한 이유로 오히려 새로운 질문과 고민이 더해진 케이스인것 같아요. 제 스스로 일을 열심히 또 꾸준히 했었던 이유를 여전히 찾는 중이니까요. 다만 사회 초년생 때 했던 고민이 10개라면 지금은 6-7개 정도예요. 많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같은 질문이여도 제가 질문을 대하는 방식, 저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봐요. 이전에는 고민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면 누군가와도 이야기를 나눠요. 각자의 인생이니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의견을 통해 내가 나 자신만의 기준에 집착하는건 아닌지도 살펴보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정서적인 지지를 받기도 하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맞아요.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든 잠시 스쳐지나는 만남이든, 지금 옥진님과 저도 그렇고 우리는 서로의 삶에 발자국을 남긴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한테 울림을 주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HFK 모임을 통해서 지식이나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같은 팀장이자 직장인으로서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어요. 20년차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거든요. 아마 HFK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최근에 IT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갭이어를 가지려는 고민을 나눴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네모란 문제를 네모로만 보고 답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아예 문제를 세모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저의 고민이 네모란 문제를 세모로 바꾸고 있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아하, 싶었죠.
지금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확신이 든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회사탓, 환경탓인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다음에 어느 회사를 가야하나?’, ‘거기서 어떤 일을 하게될까?’라는 질문만 던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열정 가득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태도로 있는가?’라고 질문 자체가 바뀌었죠.
저도 그렇게 질문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어요. 과연 이 선택은 내 욕망에 충실한 것인가 묻기도 하고, 내가 좋은거든 싫은거든 과연 어디까지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지 나만의 기준과 정의를 세워가는 시간이요. 나의 한계치를 아는것, 내 나름대로 재정의하는 것, 이런 시간을 가지니 이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지난 제 커리어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일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어왔지만 보편화된 루트가 아니면 쉽게 입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다행히 코로나를 계기로 연차/직종/성별 상관없이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이 공론화되고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지고 있는거죠. 그간 한국 사회는 나에게 집중하고 숙고할 만한 기회나 여유 자체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소위 말하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갭이어를 갖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이전의 저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에요.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만 봐도 제 인생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고 느껴요. 제가 갭이어 이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 모르지만, 20년간 직장생활에서 배운 걸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시간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삶으로 체화되어 있으니까요. 넥스트 커리어를 선택할 때에는 월급쟁이로서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싶어요.
어떤 선택이든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당위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숙고의 과정을 몸소 통과했는지 여부는 같은 상황이라도 관점이 다르니 큰 차이가 있는거구요. 옥진님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직 테크닉이나 어떤 이슈가 아닌 옥진님의 본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여겨져요. 백세시대에 커리어의 끝지점은 없지만 커리어 시작점, 중간지점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회사 이름 대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면 좋겠어요. 저연차일때는 오히려 자기 확신이 높아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있는데 어딜 가나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중심있게 서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 이직이 유행이고 트렌드처럼 비춰지지만 사실 이직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99%의 기득권을 내려두고 내가 추구하는 1%를 얻는거거든요. 새로운 시작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니 이직에 대한 선택은 항상 신중해야 된다고 봐요. 또한,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유지하게 되더라도 이 역시 충분히 좋은 커리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 노력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백세시대에 커리어의 끝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커리어는 개인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고 절대 단기 레이스가 아니라는 점이예요. 그러니 평소 일과 삶에 대해 편히 이야기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꼭 만드시길 바래요. 너무 깊은 관계가 아니어도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HFK 같은 커뮤니티도 좋은 기회이고요.
적절한 거리의 타인이 오히려 더 위로가 될 때가 있죠. 그럼 반대로 혹시 3N년차 커리어의 길을 겪고 있는 분을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은 전혀 예상을 못한거라 다른 이야기로 대신 답변하자면 개인적으로 개그맨 이경규 씨를 굉장히 좋아해요. 40년이 넘는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여전히 본인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갖고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러워요. 아마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저도 10년, 20년 뒤에 이경규씨처럼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옥진님은 이번 인터뷰를 그동안의 커리어를 정리하고 정해지지 않은 넥스트를 발견하는 계기로 삼고 싶으셨다해요. 우리 모두 넥스트 커리어를 고민하지만 이 고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이직 기술보다는 내 자신의 정체성과 내가 추구하는 일의 본질을 정의하는게 우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 아래 혹시 어떤 지식이나 테크닉만 쌓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질문을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제대로 고민하기하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잠시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었다는 옥진님. 나를 발견해나간다는건 어쩌면 용기를 갖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과 이직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삶과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된 이번 인터뷰, 어떠셨나요? 여러분은 지금 일에서 삶을 바라보고 계시나요 아니면 삶에서 일을 바라보고 계시나요?
갭이어 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되실지 알 수 없지만, 이 과정을 직접 관통한 후 더 성장해있을 옥진님의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숙고의 과정을 거친 내가 바라보는 나와 내 일은 전과는 다를테니까요.
글 멤버 김고운 Instagram
판을 만들고 공공가치를 확산시키는 커넥터로서 사람/지역/국가 간 파트너십 제고를 위한 프로젝트 기획 14년차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퇴근후에는 커뮤니티와 글쓰기를 통해 낯선 환경과 다른 사람들에 나를 노출시키며 나다운 선택을 위한 경험수집가 이기도 합니다.
Instagram @hfk_official
Youtube 흐프크티비
𝐘𝐨𝐮𝐫 𝐆𝐫𝐨𝐰𝐭𝐡 𝐌𝐚𝐭𝐭𝐞𝐫𝐬.
𝐇𝐅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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