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님은 여느 때와 같이 빳빳하게 다려진 새하얀 화이트 셔츠를 입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조곤조곤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HFK가 말하는 인재상(지성, 관계, 성장)에 딱 맞는 그녀. 공부만 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고, 걱정하며 헤어졌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 누구보다 호기심 넘치고, 발 빠르게 실행하며, 자신에게 꼭 맞는 우아한 방법을 찾아가는 여행가 같은 모습이었다.
유리님,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유리님은 본인을 소개하실 때 영어 코치라고 하시던데, 영어 코치는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사실 영어강사인데, 저는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과 수업하면서 수정도 하고, 방향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코치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어요.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영어 강사라고 하고 있어요.
유리님은 처음부터 영어 코치 일을 계속하셨던 거예요? 첫 사회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학부 때는 언어 공부를 했어요. 영문학과 불문학을 했는데, 그때는 문학을 좋아해서 두 개를 공부했어요. 그 이후로는 ‘항상 영어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정도였죠. 동시통역대학원 준비하면서 국제관계 쪽 공부를 하게 됐는데 거기에 관심이 생겨서 동시통역대학원이 아니고 국제대학원을 가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옵션이 있잖아요. 외신기자가 되거나, 유학을 가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어서 신문사 인턴십도 해보고 유학도 준비했어요. 유학은 국제관계를 하면서 국제관계 분야가 여러 개가 있는데 저는 여성인권 쪽을 공부 했죠. 그쪽으로 유학을 갈까 하다가 여성학 대회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그 정도의 페미니스트는 아니어서 내가 갈 곳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때 공부를 오래 한 거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사기업에서 하는 국제 교류팀을 가게 된 거죠. 회사 입사하고 했던 일들이 국제업무였어요. 통번역하고 국제회의 어레인지하고 해외 출장을 가기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의전을 하는 일들을 2년 정도 했어요. 그 회사에서의 경험은 인턴십 했던 일들의 총합이었던 거 같아요.
국제 교류팀에서 하셨던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국제 교류팀에서는 해외 연구소나 대학교를 한국에 유치하는 일을 했어요. 해외 대학의 노하우와 교수진, 좋은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는 업무였어요. 그때 하려고 했던 분야는 바이오테크놀로지와 IT였는데 상암동에 미디어 기관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도 있었어요.
그 곳에서 2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좀 쉬고 싶었어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렸던 것 같아서요. 20대를 마냥 쉴 수 없어서 영어 티칭 업무를 하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MBA 가시는 분들 인터뷰 코칭을 하게 됐어요. 그때 마가님하고 그렇게 인연이 돼 만나게 되었어요. (마가님은 HFK 고급진영어 OP를 맡고 계시다)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국제 교류팀 이후 리서치 회사에서 일을 하신 거예요?
다음 커리어를 고심해서 옮긴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옮겼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는 영어로 해보자.’ 영문 에디터 포지션이 있길래 그 회사가 뭔지도 모르고 지원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시장조사 회사였던 거예요. 거기서 7년 정도 영문 에디터로 일 했는데 에디팅만 했던 건 아니고, 욕심이 있어서 일을 조금 더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영문 에디터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해외 시장조사도 하고 FGI(Focus Group Interview) 모더레이터 일을 담당했어요.
영어 하나로 다양한 일들을 하셨네요. 유리님도 호기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제가 욕심을 냈던 것도 있었어요. ‘내 영역을 넓히고 싶다.’ 그런 욕심이 있었죠. 상사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니 ‘그래 좋아!’ 하시면서 일을 더 주시더라고요. 나중에는 후회했어요. ‘나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적당히 주는 것만 했었어도 됐는데.(웃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했던 거 같아요. 그때 그 경험이 지금 영어를 가르칠 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영어 강사만 했던 게 아니라 비즈니스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상담 역할도 많이 하게 되고 분야에 대해서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많이 알려줄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업무를 하셨는데, 7년 동안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심적으로 부담됐던 프로젝트가 있어요. 미스터리 쇼핑 프로젝트였는데 그때 제가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영어를 가장 잘하는 클라이언트랑 붙여준 거예요. 프로젝트를 위해 런던을 가게 됐는데, 영어를 잘하는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 리더였어요. 저는 그쪽 리서쳐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숨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클라이언트가 오기 3일 전부터 그 매장과 비교되는 애플 스토어를 돌면서 대충 감을 익히고 정리를 한 상태에서 클라이언트를 기다렸죠. 오자마자 어떠냐고 묻는 거예요. 어떤 느낌이냐고.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얘기를 다 못하겠더라고요. 클라이언트는 ‘뭐지? 회사 에이스를 보냈다고 하는데 영어도 못하고 전문지식도 없어 보이는 애가 왜 온 거지?’ 그런 느낌이었죠. 그 미스터리 쇼핑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매장을 둘러보고 영국인 미스터리 쇼퍼 네 명을 불러서 모더레이션을 해야 하는 거였어요. 클라이언트가 ‘영어도 못하는 애가 무슨 모더레이션?’ 이런 표정이었는데 그때 제가 숨겨뒀던 영어실력을 발휘하고 클라이언트가 썼던 용어들을 쓰면서 진행하고 잘 끝내게 되었어요. 그 클라이언트가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왜 에이스라 하는지 알겠습니다’. 모더레이션을 마치고 쓴 보고서에 대해서도 인사이트가 많은 보고서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똑똑했던 클라이언트랑 씨름했던 것도 그렇고 스터디도 많이 하고 더 열심히 준비했던 그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일하셨던 이야기 들으니까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만 있으신거 같아요.
그때는 일이 참 재밌었던 거 같아요. 힘들지 않았고 도와주고 나면 성취감을 느꼈어요. 나중에 한 5년쯤 됐을 때는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약간 반복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 가는 게 즐겁지도 않고,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생각도 들어서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궁금한데요.
그때는 그냥 다 재미없었던 거 같아요. 기간이 길지는 않았는데 뭘 해도 새롭지가 않고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그만두려고 하니까, 제 직속 상사가 휴가를 주시면서 개인적으로 인생 상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커리어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싱글 라이프가 길기도 하고, 인생에 뭔가 변곡점이 있어야 하는데, 인생에 커리어만 있는 상황인 거죠. 아마도 인생에 있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애를 키우고…이런 변화들이 있으면 그렇게 또 지나가는데, 그게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커리어만 하니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거죠.
그때 많이 깨달았던 거 같아요. 슬럼프를 겪고 나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PT랑 요가를 시작했는데 지금도 요가는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습관이 많이 걷는 거예요. 제가 고민이 있거나 할 때 많이 걸어요. 요즘은 미세먼지가 있어서 많이 걷지는 못해서 헬스장에서 걷거나 뛰죠.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엔 만보 이상 걷는거 같아요. 공원도 걷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도 구경하고요. 걸으면 시야에 다른 것들이 보이니까 생각을 안하게 되요. 어떤 분들은 스트레스를 친구들 만나서 술로 푸시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약간 고민이 있을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요. 혼자 걷거나 어디 공원이나 미술관 같은데 가서 작품도 보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요.
회사 다니면서 ‘영어’라는 무기가 있으니까 사이드 잡도 하시고, 퇴사 결심이 막연하다기보다 ‘난 어디서든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으셔서 던지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네 맞아요. 제가 가끔씩 후배들한테 하나의 income source에 의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항상 플랜B를 가지라고. 다음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고 일을 하라고 하거든요. 제가 경험해본 회사는 저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거든요. 안정적이지도 않고요. 지금 상태에서는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 때 내가 나갈 수 있는, 박차고 나갈 수 있으려면 미리 사전 준비가 있어야죠. 그래서 다른 실력을 쌓던 아니면 지금 하는 분야에서 월등하게 잘하던… 회사가 나를 영원히 케어 해줄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매일 이야기해요.
직장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했던 후배가 있나요? 어떤 스타일이라든지 성향이라든지 보는 관점이 있으실까요?
2명이 기억 나는데 한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고, 한 친구는 연락은 안 하는데 그 친구의 태도가 좋아서 기억이 나요. 한 친구는 굉장히 성실한 친구예요. 그리고 한 번도 싫은 내색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정말 표정의 변화가 없는 친구죠. 싫은 게 많이 안 드러났어요. 그때 그 친구의 성실함 그리고 어른스러움, 꿋꿋하게 일했던 게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람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성실, 그리고 시간 엄수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만날 때도 시간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신입사원 때부터 항상 20~30분 전에 회사에 가 있었어요. 안 늦으려고요. 출장을 가도 상사보다 10분이든 20분이든 먼저 기다리고 있고, 내가 의전 하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제가 좋아하는 후배가 그런 친구였어요. 다른 한 친구는 항상 웃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보면 기분 나쁠 일이 없어요. 그리고 그 친구도 무슨 일을 맡기면 성실하게 잘 했어요. 그래서 저보다 10살이 어렸는데도 ‘저런 점은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싫은 것도 있을 텐데 ‘예스’하고 꿋꿋하게 일하하는 모습이 참 좋았던거 같아요.
리서치 하는 회사에서 리프레시도 하시고 3~4년을 더 다녔는데 왜 그만두시게 됐어요?
그 회사도 7년 다니는 동안에도 한번 합병이 되고, 그만둔 시점에서 조직 개편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대상은 아니었는데, 친한 후배도 대상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떠나면서 약간 마음에 요동이 왔던 거 같아요. 외국계 회사가 나에게 어떤 커리어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구나. 그런 계기로 쉬고 싶다 생각해서 그만뒀어요. 그리고 1년 정도 영어 가르치고 번역하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충전이 되면 조직으로 돌아가자 생각을 했는데, 벌써 5년째 안 돌아가고 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면 일과 개인적인 삶에서의 분리가 안 되어 있을 거 같은데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은 분리가 안돼요. 어떤 분들은 프리랜서가 좋겠다고 하지만 더더욱 시간을 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HFK 영어모임, 중국어 공부, 그 이외의 시간이 확보되면 부모님을 만나던 친구랑 약속 시간을 정하던 그러지, 일이 항상 중심이고 그 다음에 개인생활을 거기에 맞춰서 활용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풀로 활용하는 거네요. 아침부터 영어 티칭하고 HFK 모임 리딩하고 지금은 가을님 서인님과 인터뷰하니깐요. 아 그리고 저녁에는 또 티칭이 있어요.
그게 바빠 보일 수 있는데 사실은 얽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이런 상황들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해요. 얽매이지 않은 걸 더 좋아하는 성향인가봐요.
유리님은 뭐하고 노세요?
제가 술 먹고 이렇게 노는 걸 안 좋아해요. 그건 의미가 없고 시간 낭비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찾는 것 같아요. 여행 가서도 그냥 쉬기도 해요. 안 쉬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냥 뭔가 한두 개라도, 만약 그날 머리 쓰기 싫으면 많이 걷거나, 오늘은 뭔가 맛있는 걸 먹어야지, 오늘은 전시를 하나 보자, 그런 걸 넣는 거 같아요. 스케줄 보면 바빠 보이지만 중간에 빈 공간이 생기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중간중간 짬 나는 시간을 활용해요.
일도 노는 것도 결국 시간관리로 이어지네요?
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월급을 정기적으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맞춰서 해야 하거든요. 번역도 데드라인이 있고, 티칭은 시간을 지켜야죠. 제가 늦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시간은 꼭 지키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차를 운전하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HFK에 꽤 오래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HFK를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영문 에디터로 일하면서 경영 지식, 비즈니스 영어가 필요 했는데 Harvard Business Review가 글도 좋고 문장도 좋았어요. HBR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재윤 님이 운영하시던 모임을 알게 됐고 모임에 참여하다가 재윤님이 HFK를 만들고나서 영어모임을 맡아달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멤버들이 돌아가며 발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같이 영상을 보고 HBR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벌써 3년 가까이 되네요. 아직까진 재미있어요. 와서 공부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몰랐던 부분을 알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저 공부하려고 강제적으로 하는 것도 있어요. 멤버분들을 만나러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티칭을 하게 되면 공부를 더 하게 되는 강제성 같은 거죠.
HFK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영어 외에 도움을 받았다거나 도움을 주신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죠. 여기 와서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났고요. 예전에 MBA 인터뷰 티칭 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 받은 자극만큼 열심히 사시는 멤버분들이 많이 계셔서 자극이 돼요. 그리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한국어판 번역도 여기 활동하면서 참여하게 된거에요. 영어모임을 운영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영어 공부를 하러 왔지만 지금은 운영진도 생기고 같이 하는 활동들이 너무 좋아요. 하나의 소속감이 있는 느낌이거든요.
멤버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팀은 천재를 이긴다’ 책 번역도 여기서 만났던 분들과 같이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저도 뭔가를 돌려주고 싶은데, 결국은 지금 영어모임을 잘 운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인생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인생을 돌아보면 크게 계획하고 살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동안 공부를 했던 것도 ‘공부하고 싶어. 재밌어’ 그러면 그걸 공부했던 거 같고, ‘아 이거가 필요해’ 이러면 필요한 거 찾아서 도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한 것도 어떻게 보면 상대와의 약속도 있지만 대충하는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있어요.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잖아요. 계획하기 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잘 잡고 싶어요. 어떤 기회일지 모르니 매사에 최선을 다해요. 지금 HFK에서 영어모임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요. 제 스스로 영어실력도 계속 갈고 닦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요.
제 경험 상 우연히 무언가를 시작해도 열심히 하면 기회들이 오는 거 같아요. 여기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죠. 영어 공부하려고 모임을 왔었고, 잉글리시 클럽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만들고 운영하고, 그러다가 HBR 번역도 하게 되고, 멤버분들 중에 영어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기도 하고요. 그냥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유리님에게 일이란?
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진 않아요. 고민은 많이 해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건 ‘재미’라는 단어 같아요.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고요. 영어도 시험 점수를 잘 받겠다가 아니라 재밌어서 했어요. 영어 코칭할 때도 영어를 점수가 아닌 재미, 이를 닦듯이 습관처럼 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활용할 날이 올거에요. 저에게 일은 무엇보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동기부여의 달인, 오유리
오유리
HFK Operating Partner (고급진영어)
• (현) 영어코칭/번역 프리랜서
• (전) TNS
유리님은 여느 때와 같이 빳빳하게 다려진 새하얀 화이트 셔츠를 입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조곤조곤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HFK가 말하는 인재상(지성, 관계, 성장)에 딱 맞는 그녀. 공부만 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고, 걱정하며 헤어졌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 누구보다 호기심 넘치고, 발 빠르게 실행하며, 자신에게 꼭 맞는 우아한 방법을 찾아가는 여행가 같은 모습이었다.
유리님,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는데 유리님은 본인을 소개하실 때 영어 코치라고 하시던데, 영어 코치는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사실 영어강사인데, 저는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과 수업하면서 수정도 하고, 방향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코치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어요.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영어 강사라고 하고 있어요.
유리님은 처음부터 영어 코치 일을 계속하셨던 거예요? 첫 사회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학부 때는 언어 공부를 했어요. 영문학과 불문학을 했는데, 그때는 문학을 좋아해서 두 개를 공부했어요. 그 이후로는 ‘항상 영어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정도였죠. 동시통역대학원 준비하면서 국제관계 쪽 공부를 하게 됐는데 거기에 관심이 생겨서 동시통역대학원이 아니고 국제대학원을 가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옵션이 있잖아요. 외신기자가 되거나, 유학을 가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어서 신문사 인턴십도 해보고 유학도 준비했어요. 유학은 국제관계를 하면서 국제관계 분야가 여러 개가 있는데 저는 여성인권 쪽을 공부 했죠. 그쪽으로 유학을 갈까 하다가 여성학 대회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그 정도의 페미니스트는 아니어서 내가 갈 곳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때 공부를 오래 한 거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사기업에서 하는 국제 교류팀을 가게 된 거죠. 회사 입사하고 했던 일들이 국제업무였어요. 통번역하고 국제회의 어레인지하고 해외 출장을 가기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의전을 하는 일들을 2년 정도 했어요. 그 회사에서의 경험은 인턴십 했던 일들의 총합이었던 거 같아요.
국제 교류팀에서 하셨던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국제 교류팀에서는 해외 연구소나 대학교를 한국에 유치하는 일을 했어요. 해외 대학의 노하우와 교수진, 좋은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는 업무였어요. 그때 하려고 했던 분야는 바이오테크놀로지와 IT였는데 상암동에 미디어 기관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도 있었어요.
그 곳에서 2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좀 쉬고 싶었어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렸던 것 같아서요. 20대를 마냥 쉴 수 없어서 영어 티칭 업무를 하려고 알아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MBA 가시는 분들 인터뷰 코칭을 하게 됐어요. 그때 마가님하고 그렇게 인연이 돼 만나게 되었어요. (마가님은 HFK 고급진영어 OP를 맡고 계시다)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국제 교류팀 이후 리서치 회사에서 일을 하신 거예요?
다음 커리어를 고심해서 옮긴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옮겼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는 영어로 해보자.’ 영문 에디터 포지션이 있길래 그 회사가 뭔지도 모르고 지원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시장조사 회사였던 거예요. 거기서 7년 정도 영문 에디터로 일 했는데 에디팅만 했던 건 아니고, 욕심이 있어서 일을 조금 더 확장시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영문 에디터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해외 시장조사도 하고 FGI(Focus Group Interview) 모더레이터 일을 담당했어요.
영어 하나로 다양한 일들을 하셨네요. 유리님도 호기심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제가 욕심을 냈던 것도 있었어요. ‘내 영역을 넓히고 싶다.’ 그런 욕심이 있었죠. 상사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하니 ‘그래 좋아!’ 하시면서 일을 더 주시더라고요. 나중에는 후회했어요. ‘나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적당히 주는 것만 했었어도 됐는데.(웃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했던 거 같아요. 그때 그 경험이 지금 영어를 가르칠 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영어 강사만 했던 게 아니라 비즈니스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상담 역할도 많이 하게 되고 분야에 대해서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많이 알려줄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업무를 하셨는데, 7년 동안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심적으로 부담됐던 프로젝트가 있어요. 미스터리 쇼핑 프로젝트였는데 그때 제가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영어를 가장 잘하는 클라이언트랑 붙여준 거예요. 프로젝트를 위해 런던을 가게 됐는데, 영어를 잘하는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 리더였어요. 저는 그쪽 리서쳐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숨기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클라이언트가 오기 3일 전부터 그 매장과 비교되는 애플 스토어를 돌면서 대충 감을 익히고 정리를 한 상태에서 클라이언트를 기다렸죠. 오자마자 어떠냐고 묻는 거예요. 어떤 느낌이냐고.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얘기를 다 못하겠더라고요. 클라이언트는 ‘뭐지? 회사 에이스를 보냈다고 하는데 영어도 못하고 전문지식도 없어 보이는 애가 왜 온 거지?’ 그런 느낌이었죠. 그 미스터리 쇼핑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은 역할은 매장을 둘러보고 영국인 미스터리 쇼퍼 네 명을 불러서 모더레이션을 해야 하는 거였어요. 클라이언트가 ‘영어도 못하는 애가 무슨 모더레이션?’ 이런 표정이었는데 그때 제가 숨겨뒀던 영어실력을 발휘하고 클라이언트가 썼던 용어들을 쓰면서 진행하고 잘 끝내게 되었어요. 그 클라이언트가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왜 에이스라 하는지 알겠습니다’. 모더레이션을 마치고 쓴 보고서에 대해서도 인사이트가 많은 보고서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똑똑했던 클라이언트랑 씨름했던 것도 그렇고 스터디도 많이 하고 더 열심히 준비했던 그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일하셨던 이야기 들으니까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만 있으신거 같아요.
그때는 일이 참 재밌었던 거 같아요. 힘들지 않았고 도와주고 나면 성취감을 느꼈어요. 나중에 한 5년쯤 됐을 때는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약간 반복되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 가는 게 즐겁지도 않고,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생각도 들어서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궁금한데요.
그때는 그냥 다 재미없었던 거 같아요. 기간이 길지는 않았는데 뭘 해도 새롭지가 않고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그만두려고 하니까, 제 직속 상사가 휴가를 주시면서 개인적으로 인생 상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커리어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싱글 라이프가 길기도 하고, 인생에 뭔가 변곡점이 있어야 하는데, 인생에 커리어만 있는 상황인 거죠. 아마도 인생에 있어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애를 키우고…이런 변화들이 있으면 그렇게 또 지나가는데, 그게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커리어만 하니까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거죠.
그때 많이 깨달았던 거 같아요. 슬럼프를 겪고 나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PT랑 요가를 시작했는데 지금도 요가는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습관이 많이 걷는 거예요. 제가 고민이 있거나 할 때 많이 걸어요. 요즘은 미세먼지가 있어서 많이 걷지는 못해서 헬스장에서 걷거나 뛰죠.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엔 만보 이상 걷는거 같아요. 공원도 걷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도 구경하고요. 걸으면 시야에 다른 것들이 보이니까 생각을 안하게 되요. 어떤 분들은 스트레스를 친구들 만나서 술로 푸시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약간 고민이 있을 때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요. 혼자 걷거나 어디 공원이나 미술관 같은데 가서 작품도 보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요.
회사 다니면서 ‘영어’라는 무기가 있으니까 사이드 잡도 하시고, 퇴사 결심이 막연하다기보다 ‘난 어디서든지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으셔서 던지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네 맞아요. 제가 가끔씩 후배들한테 하나의 income source에 의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항상 플랜B를 가지라고. 다음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고 일을 하라고 하거든요. 제가 경험해본 회사는 저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거든요. 안정적이지도 않고요. 지금 상태에서는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 때 내가 나갈 수 있는, 박차고 나갈 수 있으려면 미리 사전 준비가 있어야죠. 그래서 다른 실력을 쌓던 아니면 지금 하는 분야에서 월등하게 잘하던… 회사가 나를 영원히 케어 해줄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매일 이야기해요.
직장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했던 후배가 있나요? 어떤 스타일이라든지 성향이라든지 보는 관점이 있으실까요?
2명이 기억 나는데 한 친구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고, 한 친구는 연락은 안 하는데 그 친구의 태도가 좋아서 기억이 나요. 한 친구는 굉장히 성실한 친구예요. 그리고 한 번도 싫은 내색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떤 일을 해도 정말 표정의 변화가 없는 친구죠. 싫은 게 많이 안 드러났어요. 그때 그 친구의 성실함 그리고 어른스러움, 꿋꿋하게 일했던 게 보기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사람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성실, 그리고 시간 엄수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만날 때도 시간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신입사원 때부터 항상 20~30분 전에 회사에 가 있었어요. 안 늦으려고요. 출장을 가도 상사보다 10분이든 20분이든 먼저 기다리고 있고, 내가 의전 하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제가 좋아하는 후배가 그런 친구였어요. 다른 한 친구는 항상 웃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보면 기분 나쁠 일이 없어요. 그리고 그 친구도 무슨 일을 맡기면 성실하게 잘 했어요. 그래서 저보다 10살이 어렸는데도 ‘저런 점은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분명히 싫은 것도 있을 텐데 ‘예스’하고 꿋꿋하게 일하하는 모습이 참 좋았던거 같아요.
리서치 하는 회사에서 리프레시도 하시고 3~4년을 더 다녔는데 왜 그만두시게 됐어요?
그 회사도 7년 다니는 동안에도 한번 합병이 되고, 그만둔 시점에서 조직 개편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대상은 아니었는데, 친한 후배도 대상이었고, 사람들이 많이 떠나면서 약간 마음에 요동이 왔던 거 같아요. 외국계 회사가 나에게 어떤 커리어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구나. 그런 계기로 쉬고 싶다 생각해서 그만뒀어요. 그리고 1년 정도 영어 가르치고 번역하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충전이 되면 조직으로 돌아가자 생각을 했는데, 벌써 5년째 안 돌아가고 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면 일과 개인적인 삶에서의 분리가 안 되어 있을 거 같은데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지금은 분리가 안돼요. 어떤 분들은 프리랜서가 좋겠다고 하지만 더더욱 시간을 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HFK 영어모임, 중국어 공부, 그 이외의 시간이 확보되면 부모님을 만나던 친구랑 약속 시간을 정하던 그러지, 일이 항상 중심이고 그 다음에 개인생활을 거기에 맞춰서 활용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풀로 활용하는 거네요. 아침부터 영어 티칭하고 HFK 모임 리딩하고 지금은 가을님 서인님과 인터뷰하니깐요. 아 그리고 저녁에는 또 티칭이 있어요.
그게 바빠 보일 수 있는데 사실은 얽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이런 상황들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해요. 얽매이지 않은 걸 더 좋아하는 성향인가봐요.
유리님은 뭐하고 노세요?
제가 술 먹고 이렇게 노는 걸 안 좋아해요. 그건 의미가 없고 시간 낭비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찾는 것 같아요. 여행 가서도 그냥 쉬기도 해요. 안 쉬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냥 뭔가 한두 개라도, 만약 그날 머리 쓰기 싫으면 많이 걷거나, 오늘은 뭔가 맛있는 걸 먹어야지, 오늘은 전시를 하나 보자, 그런 걸 넣는 거 같아요. 스케줄 보면 바빠 보이지만 중간에 빈 공간이 생기면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중간중간 짬 나는 시간을 활용해요.
일도 노는 것도 결국 시간관리로 이어지네요?
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월급을 정기적으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맞춰서 해야 하거든요. 번역도 데드라인이 있고, 티칭은 시간을 지켜야죠. 제가 늦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시간은 꼭 지키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차를 운전하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HFK에 꽤 오래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HFK를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영문 에디터로 일하면서 경영 지식, 비즈니스 영어가 필요 했는데 Harvard Business Review가 글도 좋고 문장도 좋았어요. HBR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재윤 님이 운영하시던 모임을 알게 됐고 모임에 참여하다가 재윤님이 HFK를 만들고나서 영어모임을 맡아달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멤버들이 돌아가며 발표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같이 영상을 보고 HBR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벌써 3년 가까이 되네요. 아직까진 재미있어요. 와서 공부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몰랐던 부분을 알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저 공부하려고 강제적으로 하는 것도 있어요. 멤버분들을 만나러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티칭을 하게 되면 공부를 더 하게 되는 강제성 같은 거죠.
HFK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영어 외에 도움을 받았다거나 도움을 주신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죠. 여기 와서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났고요. 예전에 MBA 인터뷰 티칭 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 받은 자극만큼 열심히 사시는 멤버분들이 많이 계셔서 자극이 돼요. 그리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한국어판 번역도 여기 활동하면서 참여하게 된거에요. 영어모임을 운영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영어 공부를 하러 왔지만 지금은 운영진도 생기고 같이 하는 활동들이 너무 좋아요. 하나의 소속감이 있는 느낌이거든요.
멤버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팀은 천재를 이긴다’ 책 번역도 여기서 만났던 분들과 같이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저도 뭔가를 돌려주고 싶은데, 결국은 지금 영어모임을 잘 운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인생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인생을 돌아보면 크게 계획하고 살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동안 공부를 했던 것도 ‘공부하고 싶어. 재밌어’ 그러면 그걸 공부했던 거 같고, ‘아 이거가 필요해’ 이러면 필요한 거 찾아서 도전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한 것도 어떻게 보면 상대와의 약속도 있지만 대충하는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있어요.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잖아요. 계획하기 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잘 잡고 싶어요. 어떤 기회일지 모르니 매사에 최선을 다해요. 지금 HFK에서 영어모임 운영하는 것도 그렇고요. 제 스스로 영어실력도 계속 갈고 닦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우게 되고요.
제 경험 상 우연히 무언가를 시작해도 열심히 하면 기회들이 오는 거 같아요. 여기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죠. 영어 공부하려고 모임을 왔었고, 잉글리시 클럽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만들고 운영하고, 그러다가 HBR 번역도 하게 되고, 멤버분들 중에 영어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기도 하고요. 그냥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유리님에게 일이란?
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진 않아요. 고민은 많이 해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건 ‘재미’라는 단어 같아요.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고요. 영어도 시험 점수를 잘 받겠다가 아니라 재밌어서 했어요. 영어 코칭할 때도 영어를 점수가 아닌 재미, 이를 닦듯이 습관처럼 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활용할 날이 올거에요. 저에게 일은 무엇보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인터뷰, 글: 최서인@se2nee, 박가을@fall_in_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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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영감을 주는 사람’
2 replies to “동기부여의 달인, 오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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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반갑네요! 함께한 고영 클래스 항상 즐겁고, 유익하였습니다 ^^ 멋있어요!
정은 박
‘어떤 기회일지 모르니 매사 최선을 다한다’ 지난 한 주의 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울림이었어요. 그리고 이를 닦듯 습관처럼 영어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도 불끈! 유리님 인터뷰 읽고 좋은 자극 받고 가요. 멋진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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