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수제 맥주를 만든다는 건
한국에서 수제 맥주 양조장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중형 양조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시장의 바람이 멈춘 시기에 오히려 로컬성을 살린 양조장이 있습니다. 문경 산골에 자리 잡은 태평양조의 대표이자 지난 시즌 경영브릿지 팀 멤버 양준석님을 모시고 진행한 이번 스페셜 토크에서는 무역회사에서 양조장의 대표가 된 이야기, 브랜딩에 대한 고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패션, 이커머스, 식품,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멤버들이 수제 맥주를 기울이며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무역회사 영업사원에서 양조장 창업자로
준석님의 출발점은 양조와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전자부품 무역회사에서 7년간 LED 칩과 반도체 장비를 팔았고, 브랜딩이나 마케팅과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에서 일했습니다. 싸게, 스펙을 잘 맞춰주는 게 관건인 업종이었죠. 하지만 0부터 1을 만드는, 시장을 개척하는 훈련이 창업의 두려움을 없애주었습니다. 십여 년 전 친한 친구를 6개월간 설득해 '안동맥주'를 함께 설립했고, 약 8년간 운영한 뒤 2022년 지분을 넘기고 문경에서 태평양조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안 해본 것들이 마음에 남아서, 다 해보고 뭐 해보자는 마음이 두 번째 양조장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단 맥주를 만들어 보고 지은 이름 '태평양조'
안동맥주를 운영하던 시절, 수제 맥주 업계에서는 '엠비션',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영어 이름이 트렌드였습니다. 안동맥주의 이름이 촌스럽다는 말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다른 양조장들이 '인천맥주', '강서맥주'처럼 지역명으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처에서 "안동 몇 개 들어왔습니다" 한마디면 통하는 직관적인 이름의 힘이었습니다. 태평양조라는 이름은 광고 기획사에 다니던 지인이 쉬는 시간에 직원들과 논의해서 지어준 것입니다. 신화 속 동물 '불가사리'가 난세에 나타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태평성대를 연다는 이야기에서 따왔습니다.

야생 효모와 느린 발효, 비주류를 택한 이유
태평양조의 첫 맥주는 '윈터 사워'라는 사워 맥주였습니다. 양조장에 서식하는 야생 효모를 블렌딩해 현대 기술 이전의 방식으로 빚은 술입니다. 매니아들은 열광했지만, 수제 맥주 시장의 바람은 이미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중형 양조장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준석님은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와일드 비어는 짧으면 6개월, 길면 3년이 걸리는 느린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보통의 양조장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재고 부담이지만, 문경의 싼 부동산 가격이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 제품인 '와일드 가든 청수'는 인근 와이너리에서 포도 껍질을 1톤 받아와 야생 효모로 발효시킨 맥주입니다. 와이너리가 3일 만에 건져내는 청수 포도 껍질을 트럭을 대기시켜 바로 수거하는 방식으로, 시골에서 버려지는 부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출하까지 1년이 걸렸지만, 태평양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미션을 찾아 2년, 도달한 결론은 '재미'
투자자로부터 강력한 미션을 세우라는 요구를 받고, 팀 전원이 2년간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향의 멋진 미션을 만들어보았지만, 파고들수록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왜 이걸 하지?"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습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준석님은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술은 건강에 해로워요. 이걸 잘 만든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대신 팀원들의 공통점에서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이거 어떻게 만들었지?"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 불편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수동 차를 모는 사람들. 양조장 건물을 제외한 모든 공사를 직접 했고, 밀 농사도 직접 지었습니다. 첫해에는 장마가 한 달 앞당겨지면서 수확을 하나도 못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 팀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정하고, 다시 시작하다
라인업이 많아지고 방향을 잃었을 때, 태평양조가 택한 방법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제품을 과감히 잘라내고, 생산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야생 효모를 반드시 사용할 것, 양조의 문법은 옛날 방식을 따를 것. 지역 전통주 영역에서도 쌀을 수십 번 씻어 찌는 수고로운 방식 대신, 생쌀을 갈아 바로 당화하는 지속 가능한 생산법을 선택했습니다. 장인정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태도를 택한 것입니다.

이번 스페셜 토크에서 멤버들은 와일드 가든 청수/방아, 사과 시드르, 사과와 방아로 만든 전통주 등 태평양조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시음하며 질의 응답을 나눴습니다. 화려한 브랜딩도, 거창한 사명 선언문도 없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양조장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자리였습니다.
한국에서 수제 맥주를 만든다는 건
한국에서 수제 맥주 양조장을 운영한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중형 양조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시장의 바람이 멈춘 시기에 오히려 로컬성을 살린 양조장이 있습니다. 문경 산골에 자리 잡은 태평양조의 대표이자 지난 시즌 경영브릿지 팀 멤버 양준석님을 모시고 진행한 이번 스페셜 토크에서는 무역회사에서 양조장의 대표가 된 이야기, 브랜딩에 대한 고민,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패션, 이커머스, 식품,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멤버들이 수제 맥주를 기울이며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무역회사 영업사원에서 양조장 창업자로
준석님의 출발점은 양조와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전자부품 무역회사에서 7년간 LED 칩과 반도체 장비를 팔았고, 브랜딩이나 마케팅과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에서 일했습니다. 싸게, 스펙을 잘 맞춰주는 게 관건인 업종이었죠. 하지만 0부터 1을 만드는, 시장을 개척하는 훈련이 창업의 두려움을 없애주었습니다. 십여 년 전 친한 친구를 6개월간 설득해 '안동맥주'를 함께 설립했고, 약 8년간 운영한 뒤 2022년 지분을 넘기고 문경에서 태평양조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안 해본 것들이 마음에 남아서, 다 해보고 뭐 해보자는 마음이 두 번째 양조장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단 맥주를 만들어 보고 지은 이름 '태평양조'
안동맥주를 운영하던 시절, 수제 맥주 업계에서는 '엠비션',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영어 이름이 트렌드였습니다. 안동맥주의 이름이 촌스럽다는 말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다른 양조장들이 '인천맥주', '강서맥주'처럼 지역명으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처에서 "안동 몇 개 들어왔습니다" 한마디면 통하는 직관적인 이름의 힘이었습니다. 태평양조라는 이름은 광고 기획사에 다니던 지인이 쉬는 시간에 직원들과 논의해서 지어준 것입니다. 신화 속 동물 '불가사리'가 난세에 나타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태평성대를 연다는 이야기에서 따왔습니다.
야생 효모와 느린 발효, 비주류를 택한 이유
태평양조의 첫 맥주는 '윈터 사워'라는 사워 맥주였습니다. 양조장에 서식하는 야생 효모를 블렌딩해 현대 기술 이전의 방식으로 빚은 술입니다. 매니아들은 열광했지만, 수제 맥주 시장의 바람은 이미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중형 양조장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준석님은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와일드 비어는 짧으면 6개월, 길면 3년이 걸리는 느린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보통의 양조장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재고 부담이지만, 문경의 싼 부동산 가격이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 제품인 '와일드 가든 청수'는 인근 와이너리에서 포도 껍질을 1톤 받아와 야생 효모로 발효시킨 맥주입니다. 와이너리가 3일 만에 건져내는 청수 포도 껍질을 트럭을 대기시켜 바로 수거하는 방식으로, 시골에서 버려지는 부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출하까지 1년이 걸렸지만, 태평양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미션을 찾아 2년, 도달한 결론은 '재미'
투자자로부터 강력한 미션을 세우라는 요구를 받고, 팀 전원이 2년간 고민했습니다. 처음에는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향의 멋진 미션을 만들어보았지만, 파고들수록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왜 이걸 하지?"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습니다. "그냥 재미있으니까."
준석님은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술은 건강에 해로워요. 이걸 잘 만든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대신 팀원들의 공통점에서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이거 어떻게 만들었지?"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 불편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수동 차를 모는 사람들. 양조장 건물을 제외한 모든 공사를 직접 했고, 밀 농사도 직접 지었습니다. 첫해에는 장마가 한 달 앞당겨지면서 수확을 하나도 못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 팀의 본질이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정하고, 다시 시작하다
라인업이 많아지고 방향을 잃었을 때, 태평양조가 택한 방법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제품을 과감히 잘라내고, 생산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야생 효모를 반드시 사용할 것, 양조의 문법은 옛날 방식을 따를 것. 지역 전통주 영역에서도 쌀을 수십 번 씻어 찌는 수고로운 방식 대신, 생쌀을 갈아 바로 당화하는 지속 가능한 생산법을 선택했습니다. 장인정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태도를 택한 것입니다.
이번 스페셜 토크에서 멤버들은 와일드 가든 청수/방아, 사과 시드르, 사과와 방아로 만든 전통주 등 태평양조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시음하며 질의 응답을 나눴습니다. 화려한 브랜딩도, 거창한 사명 선언문도 없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양조장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자리였습니다.